생활보자기, '품위'를 품은 예술이다.

사각형의 보자기가 요술을 부린다. 모든 물건을 포~옥 감싸 안으며 꽃이 된다. 크고 작은 물건들이 천으로 만든 보자기의 유연함으로 비밀을 간직한 채 더욱 멋스러워진다. 드리는 마음에 성의가 더해지니 아름다운 보자기에 담긴 선물은 더 귀해진다. 보자기 공예가 조옥해 씨의 손에서 조상대대로 사용되던 보자기가 ‘작품’으로 새로워지고 있다.

 

 


 

비닐봉투와 종이팩이 넘쳐나는 요즘, 보자기의 재출현은 ‘품위’다. 우리나라 고유의 싸게 문화인 보자기가 작품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부평 소재의 ‘민들레 보자기 공방’이 재탄생의 산실이다. 골목길 한 켠에 있는 공방의 문을 열자 조옥해(54세) 씨가 미싱을 돌리다 눈빛을 건넨다.
이 작은 공방은 갤러리다. 자투리 공간들이 아기자기한 보자기 작품들로 화려하고 곱다. 보자기로 변신하려는 커다란 원단들과 꽃단장을 기다리는 보자기들이 쌓여있다. 전국 각 지역으로 배달되는 보자기를 만들기 위해 ‘민들레 보자기 공방’은 분주하다.

 


 


 

인천 공예인협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녀는 인천에서 유일하게 생활보자기를 만들어 보급하고 있다. 생활 보자기를 만들기 시작한지는 8년째다.
“처음 5년 동안은 집에서 작업을 했어요. 공방의 문을 연지는 만 3년이 넘었네요.” 그녀가 수줍게 웃는다.
‘보자기’하면 대충 천으로 만든 사각보로 질끈 묶는 것을 상상한다. 그러나 이곳에 있는 보자기는 격이 다르다. 이중천으로 만든 보자기는 자수와 전통매듭으로 마무리 돼 매우 고급스러워진다. 널직한 사각보는 물건을 싸고 남는 천으로 매듭이 된다. 단단히 묵인 매듭은 한 송이의 꽃을 피우고 때론 나비가 된다. 귀한 선물에 잘 어울리는 보자기로의 변신이다. 그녀의 보자기는 폐백음식과 고급음식점, 귀한 댁에 선물용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녀의 보자기는 TV 드라마에도 나왔다.
“너무 기쁘죠. 이 매듭이 저의 작품입니다. 나만의 보자기에 이 매듭이 더해져 더욱 귀하게 쓰여 지니 보람되죠.” 그녀가 매듭이 달린 보자기를 들어 보인다.


 


 


 


 

보자기의 색상은 미싱실 만큼이나 다양하고 화려하다. 그녀는 보자기와 함께 행주도 만든다. 소청이라는 원단을 잘라 자수를 달아 고급스럽게 만든다. 선물용으로 많이 판매되는 행주는 고급식당의 요리사와 대학의 조리학과 교수들이 주 고객이다.

“저는 배우고자 하는 욕구가 강했던 것 같아요.”
생활보자기를 만들기 까지 그녀의 배움은 우리 전통과 깊은 인연을 맺었다. 1980년대 초부터 우리나라 전통 매듭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후 1987년부터는 인천의 중앙시장에서 한복을 배웠다. 1년 정도 배우고 전통복식의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영등포의 ‘민속한복학원’으로 향했다. 민속한복 과정을 이수하고 5년 동안은 말 그대로 삵 바느질만 했다.


 


 


 

그리고 그녀의 관심은 다시 전통폐백음식을 배우게 했다. 국가중요무형문화제 제38호인 한복려 원장의 제자가 되었다. 그녀는 1998년에 다시 전통한복(궁중 복식연구원 1기생)을 공부한다. 그녀의 보자기에는 우리나라 전통 음식과 전통매듭, 전통복식의 우아함이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처음에 생활보자기를 한다고 했을 때 지인들의 걱정이 많았어요. 힘들게 배운 전통복식의 테크닉이 무너진다고... 남편의 이른 퇴직으로 수입이 필요했어요. 고민 고민하다가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으니 이거였어요. 처음 시작은 호구지책이었지만 지금은 너무 만족스럽고 내가 수고한 만큼 일이 많아졌어요. 입소문으로 나의 보자기를 찾는 고객이 늘었지요. 주변에서 칭찬해주고 힘을 주실 때 보람을 느껴요.”


 


 


 

그녀의 손에서 보자기가 반듯해 지고 행주가 아까울 정도로 우아해 진다. 그녀의 손에서 꽃이 피기 시작한다. 보자기로 물건을 예쁘게 포장하는 비법을 공개한다.
“다른 것 없어요. 보자기 매듭은 한가지 만 알면 응용이 가능해요. 앞으로요? 계속 생활보자기와 함께 해야죠...”
그녀가 시집 올 때 해온 놋그릇도 그녀의 보자기와 궁합을 맞춰 공방에서 빛을 발한다.

김민영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