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젊은 층은 패션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 패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해외 유명 디자이너의 이름을 줄줄이 꾀고 있을 정도다. 인터넷에선 ‘전 세계에서 가장 옷을 잘 입는 나라가 한국’이라는 말이 나기도 한다. 그만큼 우리나라 사람들이 패션에 민감하다는 말이다. 그런데, ‘한국의 코코샤넬’이라 불리는 우리나라 최초의 패션디자이너를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지난 29일, 송도 뉴욕주립대 멀티플렉스 소극장에서 우리나라 1세대 패션디자이너 노라 노의 일대기를 담은 다큐영화, ‘노라 노’가 상영됐다. 영화의 주인공인 노라 노는 직접 방문해 영화관람 후 관객들과의 대화를 이어갔다.
노라노는 우리나라 여성들 사이에서 미니스커트 열풍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19살 때부터 디자이너로 활동한 그녀는 이제 85세가 되었다.


 


 

 

"나는 옷을 통해 여성의 몸의 움직임을 바꾸고, 생각을 바꾸고, 자존심을 갖게끔 노력했다."
- 노라 노

1956년 한국 최초로 패션쇼를 개최하고, 63년엔 디자이너 최초로 기성복을 생산한 그녀는 우리나라 여성들에게 ‘자유’를 입힌 패션디자이너다. 흔히 알고 있는 윤복희의 미니스커트를 스타일링한 디자이너가 바로 노라 노였다. 지금도 연예인 패션은 항상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순위를 차지하고 있다. 노라 노 선생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5,60년대에도 마찬가지였다. 스타를 만드는데도 그녀의 옷은 커다란 역할을 했다. 그녀의 옷을 입고 TV나 영화에 출연하면, 주목을 받기 일쑤였다.
그녀의 의상을 입었던 엄앵란, 윤복희 등 당시의 스타들은 영화 ‘노라노’에 출연해 그녀의 업적을 증언했다.



93분의 영화상영 이후, 노라 노 선생이 무대에 올랐다. 세련된 커트머리에 모던한 옷맵시는 85세가 아닌 패션디자이너의 모습이었다. ‘관객과의 대화’시간에서는 패션디자이너 노라 노 외에 이번 영화 상영을 주관한 인천여성영화제 프로그래머 이영주씨와 이혜경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집행위원장이 함께했다.

노라 노 선생은 자신의 영화를 보는 내내 쑥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고 전했다.
“여러 번 봤지만, 볼 때마다 쑥스러워요. 또 이렇게 칭찬을 해주시니 부끄럽고, 감사하고요.  처음에 영화제작 제의를 받았을 땐, 거절했어요. 자기 얘기를 하는 건 옷을 벗고 나가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가족들의 권유로 결심하게 됐죠.”



관객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질문을 쏟아냈다. 소설 목민심서를 집필한 소설가 황인경씨는 디자이너 노라 노로써, 앞으로의 꿈에 대해 물었다.
노라 노 선생이 답했다.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이야말로 사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마담 코코샤넬이 88세까지 일을 했잖아요. 저는 최소한 90까지는 해야겠어요. 그래야지만 샤넬을 앞지르는 한 가지가 생길 것 같아요.” 한국의 코코샤넬이라 불리는 것에 대한 겸손이 묻어나는 답변이었다.

 


 


 

패션디자이너가 꿈인 고등학교 3학년 학생, 황민아 양이 손을 들었다.
“먼저 대한민국 패션계의 큰 분을 몰라뵈서 죄송하고, 이렇게 뵐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패션디자이너를 꿈꾸는 저 같은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실 수 있으신가요?”

“요즘은 예전에 여성을 지원해주는 분위기잖아요. 저희 때는 전부 말렸어요. 지금의 좋은 찬스가 있는데 왜 요즘 사람들은 그만큼의 노력을 하지 않는가, 실력만이 믿을 수 있는 거거든요. 제가 어떻게 하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앞으로 세계를 향해 뻗어나갈 기회가 충분하니 스스로 그 찬스를 이용해서 최대한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자신을 동화구연가라고 밝힌 오진주씨는 “당시 잘나가는 사모님들은 다 아는, 그런 잘나가는 디자이너가 왜 기성복을 출시한 것인지, 또 그 선택으로 인해 수입이 떨어지지는 않았을까, 궁금합니다. 또 노라 노 선생님은 고정관념을 깨는 용기가 있는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시대가 아무리 좋아졌어도 고정관념은 존재하는데, 이런 고정관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


 


 

이에 노라 노 선생은 연륜이 묻어나는 대답을 내놓았다.
“한 마디로 압축해서 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성공은 남의 것이에요. 행복은 내 것입니다. 성공은 남이 평가하는 것이지, 내 생활하고는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 아녜요. 내가 행복하게 사는 것만이 나의 것이라고 생각해요.” 그녀의 말에 관객들은 박수갈채를 보냈다.

당시 보수적이던 한국사회에서 여성들에게 자유를 입히고, 누구나 양장을 입을 수 있게 한 그녀다. 패션으로 한국사회의 풍토를 바꿔놓은 그녀의 선택에서 가장 중요했던 것은 남의 시선이 아닌, ‘자신의 행복’이었다.

(차지은 기자)